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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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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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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람시간 (화~일)10:00-17:30
    월요일, 공휴일 휴무

    임진왜란 창의정용군

    임진왜란 창의정용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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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2년 4월, 왜군은 명나라로 가는 길을 내달라는 구실로 부산을 공격하여 왜군은 부산진성과 동래성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한양을 향해 진군하였다. 왜군의 대규모 공격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조선군은 패배를 거듭하여 20여일 만에 한양이 점령당했고, 선조는 평양성을 거쳐 의주까지 피난을 가서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이순신의 수군이 승리를 거듭하였으며, 육지에서는 여러 지역에서 의병들이 궐기 하여 왜군을 공격하였다. 

    영천에서도 경북 10개 지역에서 모인 3960명의 의병들이 경북연합의병부대 창의정용군을 조직하여 1592년 7월 27일 왜군에게 빼앗겼던 영천성을 되찾는 쾌거를 이루었다. 


    영천성 수복전투는 조선 최초의 대규모 육지전 승리였다.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알려진 한산도 대첩, 진주대첩, 행주대첩이 적의 공격을 방어한 방어전 성격의 전투였다. 반면 영천성수복전투는 공격자의 입장에서 많은 부담을 안는 빼앗긴 성을 되찾는 공성전이었으며 훈련받은 정규군이 아닌 의병들이 주도한 전투였다.


    영천의 문화콘텐츠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는 영천성수복전투에 대하여 조선왕조실록은 “영천성수복전투는 이순신의 공로와 같다.” 라고 평가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현재의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병조판서로 활약한 백사 이항복의 백사별집에서는 이순신의 ‘명량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최고의 통쾌한 승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정신을 현재의 영천시민의 ‘시대정신’으로 부활시키고자 영천역사박물관은 영천성수복전투에 대한 순회전시, 학술연구 등의 활동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